모든걸 다 귀찮아시는 남자친구님을 1달 내내 볶다가

남친에게 “자꾸 그러다 신내동 갈래? 창동 갈꺼?” 라고 버럭버럭 거린 후에야

드디어 움직였다. 7월 1일 신천동성당.

7월에 우리가 갈만한 위치에 있는 성당 중에 딱 두군데, 신천동성당과 대치동성당 중에

2시간 밖에 안한다는 것도 플러스 요인이었다.


1시에 남친은 어머님이랑 서초동 성당에 다시 가보시고,

나는 세일이라고 쿠폰북 들고 영등포 롯데를 한번 쭉 훑고,

4시에 센트럴시티 웨프 박람회 갔다가, 6시에 무역센터 코엑스에 남친 구두 맡기도 신천동성당에 도착하니 진짜 딱 6시 50분. 배 무지 고플텐데 걱정하면서 교리실에 들어갔다.


정말 한가득 찬 성당 강의실에서 신부님에게 강의를 듣는데,

신자가 아니고 교회만 어릴 때 한 몇 년 나가봤던 나는 처음에 갑자기 기도 합시다 에서 그냥 손깍지 끼려다가 다들 성호를 긋는데 당황. 오빠가 또 천천히 설명해 주어서 따라해보고.


신천동성당은 다른 성당들 처럼 3시간 30분, 4시간 이렇게 하는데가 아니라 딱 2시간이어서 그런지

첫 한시간은 신부님이 교재를 바탕으로 사례를 들면서 요약하면서 설명해주셨다.

그런데 교회 설교는 ‘아니 왜 저렇게 보수적이야, 당신들이 유교야?’라고 생각이 들만큼 속이 답답해져서 정말 듣기 싫었었는데, 천주교는 오히려 그런게 하나도 없다. 오히려 말씀이 ‘Cool’하다 싶을 정도로 진보적이다. 처음에 발동했던, “혼인도 안해본 사람이 무슨 혼인교리를 가르친다는거야?”라는 씨니컬 모드와, 어색해서 “어머 저 커플은 커플룩 입었다, 저 커플은 여자가 아깝다, 저 커플은 남자가 아깝다” 하면서 열심히 구경하고 딴짓하던 모드를 다 없애버리고 말씀을 열심히 경청.


그리고 말씀도 말씀이지만, 교재가 너무 좋다. 가나혼인강좌 교재인데, 결혼 전에 생각해 볼만한 여러가지 내용들의 지문과 사례가 있는데 전혀 종교적인 색채가 없이, 어느 누구나 결혼 전에 고민해보고 서로 이야기 해보고 토론해보고 알아갈만한 그런 책이다. 서로 이해하기, 서로 다름을 이해하기, 경제관에 대한 고민, 같은 취미, 다른 가족과의 관계 등등… 그리고 그 내용이 우리 커플이 늘 생각하던 세계관과 가치관과 많이 일치해서, 정말 받아들이기도 너무 쉬웠고. 본디 씨니컬한 이 커플, 둘다 너무 교재 훌륭하다고 연발하면서 카페에 가서 꼭 이것저것 질문에 답변해보기로 했다. 성당에서 결혼하게 되어서 이러한 교리를 받게 된 것을 참으로 복되게 생각할만큼 좋은 시간. 종교가 없는 분들이라도 충분히 생각해볼 시간이었다. (들어갈때 신자인지 아닌지 구분하지 않으니까요, 시간 되는 분들은 한번 혼인교리에 참가해보세요. 일정은 서울대교구 홈페이지에 있습니다.)


그리고 난 배타적인 기독교 & 지나치게 holly한 기독교에 정말 질려있었는데, 교리 초기에 신부님이 그러신다. “갑자기 기도하라니까 당황하신 분들 많은 것 같네요. 허나 여기가 성당이니까 아무래도 교재 사례 내용중에 종교적인 색채가 들어간 부분이 있어요.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전에는 성당에서 결혼하려면 비신자도 꼭 예비자교리를 들어야 했다는데, 그래서 성당에서 하는 교리라 당연히 종교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갈 줄 알았는데 신앙에 대한 언급도 거의 없으시면서도 비신자를 위해 저런 말씀 해주시는게 참 멋있고 감사하게 느꼈다고나 할까.


두번째 시간은 우선 생명의 신비 비디오 감상. 중학교때 가정/가사/생물 시간에 참 수도 없이 봤던 비디오라 나는 밍숭맹숭이지만, 이런걸 처음 본 남친님은 빤짝빤짝. 정말 남자들은 생물시간에 뉴런 같은것만 배운단 말인가! 성교육은 여자 뿐만 아니라 남자들에게 더 시켜야 하는게 아닌가?


그 비디오가 끝난 뒤에는 서울대교구 가정사목팀에서 봉사하는 봉사자분께서 나와서 배란법에 대해서 강의하셨다. 배란법 보다는 정확히는 가임기에 대한 설명이랄까. 하나 크게 안 사실. 지금까지 내가 냉인줄 알고 부끄러워했던 것이 사실은 점액이란다! 나만 나오는게 아니었다. 아아 서른한살이 되어도 아직 성교육이 부족하고나~!


어쨌든 이렇게 두시간을 마치고 나서 수료증을 받아들었다.

요즘 피부과 시술 중이라 피부가 개떡이라 사진을 여기에 차마 못올리지만 (필살 포토샵 필요!) 그래도 수료증도 들고 사진도 찍고.


이렇게 하나씩 둘씩 결혼으로 가는 발자국에 도장을 찍는다. 하하핫.
Posted by europa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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