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준비를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목숨 걸고 있는게 하나 있다.
결혼의 모든 과정을 쭉 다큐식으로 사진에 담아놓은 스토리 앨범.
단순히 스냅사진이 아니라 식이 진행되는 순간순간의 묘미를 스토리로 담는 것이다.

내가 이 어울리지도 않는 '샬롯질'에 빠져들게 된건 바로 혜은이의 결혼사진을 보면서부터다.
혜은이 결혼식때 어떤 사진하는 혜은이의 친구분이 정경들을 쭉 찍어주셨는데 너무 감각적이어서 완전히 매료되었었다. 나도 결혼할 때 그런 분 있으면 정말 좋겠는데 라고 늘 생각해왔었는데 그런데 알고보니, 이 결혼업계에는 그런게 아예 일반화 되어있는 것이었다. '스토리앨범'이라고.
그래서 난 리허설 사진은 안찍어도 스토리앨범은 제대로, 최고로 찍겠다고 다짐해왔다.

그러나 나에게는 또 하나의 전제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성당 결혼.
성당 결혼도 엄연히 혼배 미사이고, 미사 촬영은 엄격하게 단속하는게 바로 성당이다.
그래서 성당은 대부분 지정스튜디오를 둬서 운영한다.
그리고 그 지정스튜디오의 대부분은 내가 초중고시절 무지하게 사진을 찍어대던 바로 그 반포스튜디오. 반포스튜디오의 스토리앨범은 꽤 괜찮지만, 너무너무 비싸서 원판+스토리앨범을 하게 되면 그것 가격만 210만원이다. 무려! (나의 리허설촬영+드레스 4벌+턱시도2벌+메이크업 2회+다큐앨범의 견적이 259만원인것을 기억해보라)

그래서 난 정말로 서강대 성당을 원했었다.
왜냐면 서울에서 거의 없다시피한 '지정스튜디오 없는 성당'이었기 때문에.
남자친구는 예비 시부모님이 서강대 CC 커플이기 때문에 문제 없을거다 라고 완전 장담했었는데.
서강대 CC셔서 너무 많이 서강대에 예식을 보고 오신 예비 시부모님이 완전 반대를 선언하셨다.
미사를 올리는 이냐시오관과 식당이 너무 멀다! 라는 이유로.
(성당결혼의 그 긴 시간을 생각했을때 이건 꽤 합리적인 반대사유인지라 나는 두손 들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한참 후 (무려 1달 흐름)


요즘 오빠 어머님은 매일매일 성당 보러 다니신다.
그런데 항상 헛걸음. 당연하지 이렇게 늦게 가셔서 식장이 있을리가 없나.
그러게 내가 알아보겠다고, 내가 후보군 선정후 넘겨드리겠다고 오빠에게 아무리 얘기해도 오빠는 지금 내가 나선다고 하면 어머님에게 찍힌다고 어머님이 고생하다가 현실을 알고 포기하시면 그때 내가 나서도 좋다 라는게 오빠 전략이었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 어제는 결국 "니네 토요일에 하겠다고 계속 우기면 식장 없어서 올해 결혼 못할테니 그리 알아라!"라고 짜증을 내셨다고 한다.

오늘 내가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비교적 신축성당인 서초3동 성당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10월달과 11월달에 아직 자리가 있단다! 그것도 12시~1시에 하루에 한 타임만 보는데!
위치도 강남 한복판이고 부페도 초이스부페 or 목동부페 선택이라 음식퀄리티도 좋고.
그런데 그런데 무려 무려! 지정사진관이 없다~!!!!!!!
난 정말 눈물 날 정도로 기뻤다. 정말 펄쩍펄쩍 뛰었다.

단점으로 주차장이 겨우 20석 밖에 안된다지만 그건 문제 될 얘기가 아니다.
어차피 성당 주차장들 다 쪼그맣고 외부 빌딩과 공용주차장 임대를 해야 하니까.
어제 보고 온 로이 스튜디오 스토리를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어찌나 기쁜지!

그래서 오빠에게 전화, 오빠는 어머님께 전화.
그 때 어머님은 분당요한성당에서 성당 보고 계셨다고 한다.
나 또 머리속 까마득. 분당요한성당은 토털패키지 성당이다. 무슨 드레스와 메이크업까지 성당지정이다. (그 이유가 이상한 사람들이 제단을 어지럽히기가 싫다나? 뭐 그런 말도 안되는. 헬퍼들에게 제단 올라가지 말라고 하면 안 올라가지, 그걸 밟냐?)
오빠는 오빠대로 거기가 지방이지 무슨 서울이야! 민폐 끼칠 일 있어! 하고 버럭버럭.
어쨌든 어머님이 서초3동 성당 보러 가시겠다고 했다.


그리고 밤.
떨리는 마음으로 어머님 재가 여부를 확인하는 전화를 하다.

어머님 : '다 좋은데 사진을 길에서 찍어야 하더라?'
성당은 직계가족만 실내에서 찍을 수 있지, 가족친지친구사진은 실외에서 찍어야 한다. 보통 성당 올라가는 계단에서 많이 찍는데, 이 성당은 그 계단이 없다.

그래서 내가 '거기는 길에서 찍을 상황이 안되면 옥상에서 찍는대요' 라고 전하라고 하니 옥상은 더 싫으시다고. 그래서 내일 수서성당 가보시겠다고.

터어어어어어어얼썩.


수서성당은.
그나마 반포스튜디오도 아니다.
그나마 방배스튜디오도 아니다.
그나마 워커힐 스튜디오도 아니다.
그나마 포토맥스도 아니다.
그냥 일원동 동네 사진관이다.

그 유럽 수도원 같이 성당이 예뻐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데,
사진관 바꾸고 싶다고 그렇게 애원하고 노력해도 죽어도 일원동 동네 사진관이란다.
스냅사진의 퀄리티가 다 원판사진이란다. 완전 80년대 사진. 이걸 왜 돈주고 사야 하나 싶은.
그래서 웨프에는 이 수서동 성당의 사진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

순식간에 이렇게 최고와 최악으로 왔다갔다 할 수 있을까..


어머님의 '사진 찍는 데가 이상해'도 좀 납득안되는 이유지만
나의 '사진이 엉망이에요'도 어른들에게 설득시키기 쉽지 않은 이유다.
게다가 서초3동성당의 주차장 태부족 이라는 단점이 있으므로
수서성당의 주차시설이 더 좋으면 설득방안이 없다.


오빠는 내가 성당 때문에 너무 걱정을 하니까 자기만 믿으라고 꼭 막겠다고 다짐을 하는데,
서강대 성당도 자기가 다짐하고서는 지고선.

아.. 부디 수서성당이여 자리가 없어라 없어라 없어라 없어라 없어라.


어쨌든 토요일에 서초3동성당으로 혼배 보러 간다.

Posted by europa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