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수서성당에 전화를 했다.
완전 매진이라는 얘기를 듣자마자 너무 기뻐서 앗싸!를 외쳤는데,
그러나 2시쯤. 수서성당 가계약 했다는 전화가 왔다.
"아니 분명 나한테는 완전 매진이라고 그랬는데?"라고 하니까.
어제 어머님이 백화점에서 만난 생면부지의 아줌마가 다리를 놔줬단다;;;
아니 그 아줌마,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왜 남의 인생에 태클을!

어쨌든 "수서성당이면 결혼안해!" 이러면서 괴로워 죽을려고 하다가,
우선 사진부터 보고 투덜거리는게 순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수서성당에 전화해서 준스튜디오 연락처를 받았다.

어디에 있느냐, 몇시까지 영업하시느냐 라고 물었더니 식이 언제란다.
11월 4일이라고 하니까 뭘 벌써부터 오실라고.. 일찍도 오시네.. 한다.
하긴 저 스튜디오 입장에서는 이렇게 일찍 온다는것은 반갑지 않을것이다.
너무 일찍 진상을 알아버려 충격에 빠져 그 성당 자체를 포기할 사람이 나뿐은 아닐테니까.

그리고 오후 7시 45분. 준스튜디오를 찾아냈다. 일원역 사거리, 상록수 아파트 내 상가 1층.
그 상가를 앞에 두고 허허허허허허 웃음이 나왔다.
내 생각에 당연히 사진관이라면  증명사진도 찍고 그래야 하니까 의자도 두고 뒤에 차양도 쳐야 하니까 최소한 어느정도의 규모가 있고 그래서 대개 2층에 있는데. 아, 이건 정말... 생각보다 너무너무 좁다. 오빠랑 나랑 상가의 위치와 상황을 파악한 다음부터 대략 아연실색 모드에 들어섰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더 충격에 빠졌다.
내가 워낙 초중고때 다녔던 사진관이 반포스튜디오이긴 했지만, 암튼 내 인생 다녀본 모든 동네사진관들 중에 이렇게도 "꼬진" (후진보다는 이 표현을 써야 명확하다) 사진관은 없었다.
진정. 8월의 크리스마스에 나오는 한석규의 사진관이 준스튜디오보다는 윈이다. 유 윈.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의연한 기색으로 말을 꺼냈다.
수서성당에 식 진행하는데 스토리앨범을 볼 수 있냐고.
아저씨... 스토리앨범이라는 단어를 모르신다... 뭐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그리고 대충 스냅앨범을 꺼내서 보여주신다.
의자도 없는 철판 책상에 앉지도 않고 서서 사진관 아저씨랑 놀러온 동네 아저씨랑 오빠랑 나랑 넷이서 서서 어정띠게 보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휙휙휙휙 사진 넘겨대시고.


하하하하하하하 수서성당이 강남에서 제일 예쁜 성당이면 뭐하나.
여기 사진은 절대로 밖에서 찍지 않는다. 모든 것을 다 실내에서 찍는다. 원판 까지도.
예쁜 성당 티 절대 안난다.

그리고 사진의 퀄리티? 요즘 디카족들 그러니까 DSLR도 아니고 내 캐논A80 보다 더한 똑딱이를 들고 다니는 유저들이 찍어도 저것보다 훨씬 잘 찍는다.
모든지 노출 최대로 플래쉬 팡팡 터뜨린 티가 확 나서 완전 희번덕 희번덕 뻔쩍 뻔쩍 거린다.
그렇게 휙휙 넘기셔서 제대로 한컷 보지도 못했지만, 앉아서 자세히 볼수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너무너무 못찍은 사진이라는게... 완전 티난다.
정말이지.. 그 자리에서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느라 힘들었다.

그래도 정신을 수습하고 가격을 물었다.
원판2개에 스냅앨범 합이 70만원이란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본식전문업체의 세미스토리+원판2개 사진이 보통 30만원이다.
좀 한다하는 스튜디오 (이를테면 뮤제나 피오나 코드 휴먼 등등)의 세미스토리+원판 2개가 보통 60만원이다. 내가 탐내하는 뮤제의 세미스토리도 아닌 풀스토리앨범+원판2개가 100만원이다.

세상에 저렇게 "나쁜" "못된' 사진관이 다 있나!
성당에 지정되어 있다는 이유 만으로 저 퀄리티로 예쁘게 잘하는 집의 2배 이상의 가격을 요구하다니! 진짜 훌륭한 수준의 세미스토리 보다도 더 비싸다니!!!!!
사진의 퀄리티를 신경쓸 생각은 전혀 없이 최상급 스튜디오와 가격을 맞추려고 하다니 저런 나쁜 사람이 다 있나!


겨우 참고 나와서 차에서 내내 울었다..
사진에 전혀 관심없는 오빠도 그 사진을 보고 충격을 먹었다고 했으니까...
저 70년대 사진 스타일에, 일반인들보다 더 못찍는게 어떻게 지정이냐고 충격먹었다고 했으니까.

너무 화가나서 성당 썩었어! 저 70만원 중에 성당 기부금이 수십일꺼야! 이러면서 신자인 오빠에게 화를 버럭 내긴 했지만 그 사진관 정말 나쁘다 정말 나쁘다. 자신들의 수준에 안맞게 돈을 비싸게 받는 것도 물론 나쁘지만, 현재의 트렌드도 전혀 모르고, 다른 웨딩사진 수준에 맞출려는 의지도 없으면서 성당 지정을 받아서 남의 인생들에 태클 거는 그 사진관 정말 나쁘다. 결혼 한번인데.. 그걸 저렇게 망쳐놓으면서 사는게 행복할까.


스토리앨범이 뭔지 잘 모르시는 나의 지인들을 위해 스토리앨범이 어떤건지 보여드린다면.

그래도 나름대로 보람찬건, 어제까지 '사진 때문에 수서성당에서 절대로 못해!' 라고 노래부르던 나를 절대 이해 못하던 오빠가 사진 보고 나서 완전 동의모드로 돌아선 것이다.  정말 다른 스토리앨범들이랑 너무 차이가 나니까. 저걸 결혼사진이라고 돈을 낸다는게 아깝고. 오빠는 심지어 아예 원판사진도 안찍고 싶다고 했다. 저기에 맡기느니.

오빠 화이팅 오빠 화이팅. 부디 수서성당을 저지하여 주세요.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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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에도 수서성당은 나쁜게 참 많다.
예쁘고 쾌적한걸 빼고 나면, 삼성의료원 보다도 더 남쪽으로 내려가는 곳이라 토요일 낮에 우리집 손님들 많은 강서구/양천구 손님들은 편도로 최소한 2시간 걸리실테고, 주차도 30석 밖에 안되고 주변에 빌릴만한 건물들도 없어 모두 길에 세워놔야 한다. 우리는 150대~200대 오실 예상하고 있는데. 그리고 사무장도 아주 불친절하기로 이름 높다. 그런데 꼭 여기서 해야되냐고오오오오.
Posted by europa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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